저자소개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전반에 걸쳐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한복판을 관통하는 삶을 산 사상가, 신학자, 고전학자, 휴머니스트다. 1466년경에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태어났지만 평생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범유럽적 지식인으로 활동했고, 20대에 수도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서품을 받았지만 신부가 되지 않고 교회 밖에서 독립적인 학자의 길을 걸었다. 특히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씌어진 고전을 깊이 있게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1500년에 《에라스무스 격언집》을 써서 펴냈고, 이 저서로 큰 명성을 얻었다. 1509년경부터는 영국에서 토머스 모어의 집에 머무르면서 이 책 《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을 집필했다. 이 책은 1511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출판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1516년에는 라틴어판과 그리스어판 《신약성서》를 집필해 출판했다. 이 밖에도 《기독교 병사의 필독서》(1503), 《기독교 군주의 교육》(1516년), 《진정한 신학의 방법》(1518), 《자유의지론》(1524), 《아동교육론》(1529), 《사도신경에 대한 설명》(1533) 등 많은 책을 써서 출판했다. 그는 저술활동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규명하고 기존 교회조직의 격식과 위선을 비판했지만, 1517년에 마르틴 루터가 촉발시킨 본격적인 종교개혁 운동에 대해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존중과 종교적 관용을 주장하면서 중립의 입장을 지켰다. 이 때문에 종교개혁 진영과 가톨릭 진영 양쪽으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했다. 에라스무스가 1536년에 질병으로 사망한 지 23년 뒤인 1559년에 그의 저서들이 가톨릭교회의 금서목록에 올랐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혀져가는 듯했지만 계몽주의 운동이 시작된 17세기부터 그의 사상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그 뒤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와 그의 저서들은 휴머니즘, 세계시민주의, 범유럽주의의 상징이 돼왔다.
목차
추천의 글 --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중세 르네상스 연구소 소장 이종숙
로테르담의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토머스 모어에게 인사를 보냅니다
로테르담의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연설
부록1: 에라스무스가 위대한 신학자 바르탱 반 도르프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부록2: 로테르담의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친구 안토니우스 룩셈부르크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부록3: 상트 베르탱의 수도원장 안톤 반 베르겐에게 정중한 인사를 올립니다
부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