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다산과 추사, 유배를 즐기다
- 저자
- 석한남 저
- 출판사
- 가디언
- 출판일
- 2018-01-09
- 등록일
- 2018-07-10
- 파일포맷
- EPUB
- 파일크기
- 50MB
- 공급사
- YES24
- 지원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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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정약용, 유배지의 현지인과 동고동락하며 1표2서로 애민을 실천하다 김정희, 금수저로 태어나 유배지에서 예술의 완성을 이루다절체절명의 유배지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간 다산과 추사의 유배 생활 이야기조선의 유배는 사대부에게 큰 형벌이었다. 유배란 사대부에게 있어 사형을 제외하고는 가장 치욕적인 벌이어서, 패가망신하거나 가문의 위상이 크게 추락하는 경우가 잦았다.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가까웠던 친지·지우들이 고개를 돌리고 떠나기도 일쑤였다.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도 정치적 탄압과 박해를 받아 강진과 제주로 유배를 떠났다. 다산은 종교적 이유로 18여 년간 유배 생활을 했고, 추사는 정치권력의 패권 다툼으로 인하여 두 번에 걸친 10여 년의 유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유배지에서의 삶은 사뭇 달랐다. 답답하고 고된 유배 생활이지만 다산은 현지에서의 삶에 적응하고 다신계를 만들어 제자들과 차와 학문을 나누었으며, 심지어 유배 생활 도중 딸까지 얻었다. 그는 이 기간을 통해 걸출한 후학을 길러냈고, 일표이서(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로 대표되는 위대한 사상 세계를 창조해냈다. 그에 비해 추사는 현지 적응에는 실패했다고 할 만큼 제주의 토착 음식과 거센 환경에 몸서리쳤다. 그는 세속의 험난함에서 벗어나 신선처럼 살아가려 했던 소동파의 유배를 동경했으나, 자신은 그런 유배 생활을 하지 못했다. 유배 기간 내내 경주 김 씨 가문과 지인들, 제주목사 등 여러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끝내 신분주의와 우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지한 현지인들의 모습에 대해 개탄하거나 다른 서예가와 스님들까지도 서슴없이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역시 단절된 유배지에서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글씨를 재창조하며 독특한 추사체를 만들어갔다. 저자는 이렇게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유배지에서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 원래 고문번역가로 사계에 정평이 나 있는 저자는 그동안 천여 편이 넘는 방대한 조선시대의 간찰과 시를 번역하였으며, 이 책에서 다산과 추사가 가족과 친지 등에게 보낸 서신과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가며 그들의 예술과 학문과 삶을 재조명했다. 이 책『다산과 추사, 유배를 즐기다』는 두 천재가 보여준 유배지에서의 생활과 학예연찬의 진실한 모습을 소개한 책이라는 점에서, 칭송 일변도의 기존 책들과 달리 두 천재의 새롭고 진솔한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저자소개
고문헌 연구가. 독학으로 한문과 고서화를 공부하여 약 3만 자 정도의 고문 문장을 외우고 있다. 초서로 쓰인 옛 편지 1천 여 편을 탈초(脫草)·번역(飜譯)하였으며, 사서(四書)에 능하다.
국민대학교, 예술의전당, 추사박물관, 단재신채호기념관, 육군박물관, 소암기념관 등에서 고서화 전시회의 자문 및 고서(古書)의 탈초와 번역을 하였다. 대형 로펌 같은 기업체, ‘에이트 인스티튜터’ 같은 미술교육기관, 공무원연수원 등에서 “공자 이야기”, “대학”, “중용”, “장자”, “우리 옛 글씨와 그림” 등의 강의를 하고 있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옛 도장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의 《서로서로》, 육사박물관의 《형명(形名)》, 추사박물관의 《정벽 유최관(貞碧 柳最寬)》, 소암기념관의 《고간(古簡)》 등을 번역하였으며, 《명문가의 문장》을 저술하였다.
목차
머리글_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다산과 추사의 유배 이야기 5</br></br>1부 놋수저 양반과 금수저 사대부</br></br>1장. 출발부터 너무 달랐던 다산과 추사</br> 다산, 소외된 남인 집안에 태어나다 17</br> 추사,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천재로 살다 22</br></br>2장. 학통과 학예 연찬에서 다른 길을 걷다</br> 비주류 지식인들과 맺은 다산의 학통(學統) 29</br> 소외된 천재들과 맺은 지란지교(芝蘭之交) 32</br></br> 연경(燕京)의 귀한 인연 34</br> 험난하지만 기대에 가득 찬 연행길 36</br> 청나라 지식인을 만나다 42</br> 옹수곤과 《천제오운첩(天際烏雲帖)》 46</br></br>3장. 다산과 추사, 승승장구하다</br>정조 임금 장학생, 다산 56 </br>일찍부터 권력의 중심에 선 추사 61 </br> 추사와 로열패밀리 61 </br> 추사와 초의선사의 만남 63</br></br>2부 유배</br></br>1장. 유배의 정석</br>몰락의 시작인가 또 다른 도전인가 69 </br>유배의 롤모델 소동파 72</br></br>2장. 다산과 추사, 유배를 떠나다 </br>가문의 몰락, 그리고 18년의 긴 유배 생활 78 </br> 정조의 사망과 암흑시대의 서막 78 </br> 율정(栗亭)의 이별 82 </br> 도연명에서 소동파로 86</br></br>권력 다툼의 희생양으로 떠난 두 번의 유배길 94 </br> 경주 김씨와 안동 김씨 94 </br> 추사와 전설의 고향 96</br></br>3장. 유배지에서 생긴 일 </br>다산과 유배지의 제자들 101 </br> 현지인으로 생활한 다산의 유배 101 </br> 신분과 계급의 차이를 넘어 꽃피운 다산학단 103 </br> 사의재와 강진 6제자 104 </br> 전등계, 유·불의 경계를 허물다 109 </br> 다산초당, 다산학이 무르익는 계절 112</br></br>다산초당에서 만난 학문과 사랑 122 </br> 다산의 자본주의 125 </br> 아! 하피첩 128 </br> 노년에 꽃피운 사랑, 두 폭의 매조도 132</br></br>4장. 유배지에서 본 추사의 민낯 </br>유배지에서도 내려놓지 못한 귀족의식 141 </br> 입에 맞는 반찬과 차를 보내라는 편지 141</br> ‘싸움닭’ 추사 146 </br> 명필 이광사를 작심하고 비판 152 </br> 백파 스님이 노망난 것이라고 비판 153 </br> 야만인들의 땅, 제주 157 </br> 평생 허물로 남은 추사의 우월의식 159</br></br>제주와 추사체 163 </br> 추사와 수선화 166 </br> 제주목사 177 </br> 실험 정신에서 비롯된 추사체와 금석학 183</br></br>세한도와 그 후의 이야기 188 </br> 책 한 권 값의 진실 188 </br> 그림, 글, 글씨가 완벽하게 빚어낸 〈세한도〉의 가치 193 </br> 이리저리 유배를 다녀온 〈세한도〉198 </br> 해배 후 강촌의 삶 200 </br> ‘북청’ 그 인연의 땅 206 </br> ‘침계(?溪)’ 유감 213</br></br>5장. 유배가 조선 천재에게 미친 긍정적 영향 </br>1표 2서에 담긴 다산의 마음 217 </br> 과골삼천(?骨三穿) 223 </br> 다산의 저서 225 </br> 경세유표(經世遺表) 226 </br> 목민심서(牧民心書) 228 </br> 흠흠신서(欽欽新書) 230</br></br>불계공졸로 완성한 추사의 예술혼 232 </br> 과천의 늙은이 232 </br> 동치미 247</br></br>참고 자료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