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게네프, 시골의사
사랑은 어떻게 통속으로 수렴 되는가? 아름다움과 진리와 종교는 어떻게 물질과 규범과 상식으로 치환되는가?
어느 겨울, 열병으로 죽어가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다. 먼 길을 달려와 그녀를 돌보는 시골의사는 자신의 환자를 뜨겁게 연민한다. 불치의 병과 죽음의 공포, 단 둘이 지새는 겨울 밤 등의 암울한 미장센 한가운데서 그 연민은 잠시 사랑의 형태로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지속될 수 있을까? 그 환상을 포착하여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까? 사람들에게 안착되고 향유되지 못한 사랑은 그저 낙엽처럼 거리에 나뒹굴고, 그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법률과 관습과 인습의 옷을 입고 권태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인 것인가?
투르게네프의 단편소설 <시골의사>는 이와 같이 철학적이면서도 시적인 문제의식과 삶에 대한 통찰을, 당시 사회상이 낳은 지식인 유형인 방관자적 ‘잉여인간’을 통해 형상화 하고 있다.
인간의 사물화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유물론적인 역설 한가운데서 정말로 ‘잉여인간’이 된 채 세상을 방관하고 냉소하며 후기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들과 시대상을 돌아보며, 시대를 관통하는 감동을 전하는 투르게네프의 명작 <시골의사>를 일독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