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성벽이 된 왕자, 금성대군 이야기
권력의 길 대신 충의의 가시밭길을 걷다
1457년 10월 21일, 경상도 순흥의 가을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렀으나 그 아래 흐르는 공기는 죽음보다 무거웠습니다. 서른둘의 젊은 나이,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이자 성군(聖君)의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던 왕자 이유(李瑜), 금성대군은 생애 마지막 잔을 앞에 두었습니다.
최근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역사영화 '왕과 같이 사는 남자'에서 우리는 그를 만났습니다. 화려한 궁궐의 권력 다툼 속에서도 오직 조카를 향한 순수한 애정과 신념을 지키던 눈빛, 그 슬픈 운명의 주인공이 바로 실제 역사 속의 금성대군입니다.
영화 속 그의 모습이 가슴 아픈 것은, 그것이 허구가 아닌 역사의 피눈물로 쓰인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내려진 명령은 '사사(賜死)'.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형, 세조가 내린 비극적인 마침표였습니다. 조선의 공식 기록은 그를 왕실을 뒤흔든 '역적'으로 남겼으나, 백성들의 가슴 속 기억은 그를 향해 다른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것은 바로 '끝까지 신의를 저버리지 않은 마지막 숙부'였습니다.
금성대군의 삶은 조선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세종의 치세 한복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왕비 소헌왕후의 적자로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부왕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학문과 무예를 닦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떠나고 형 문종마저 일찍 세상을 등지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화려한 왕족의 삶이 아닌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소용돌이였습니다.
형제들이 권력의 편에 서서 안위를 도모할 때, 그는 홀로 유배지를 전전하며 폐위된 어린 조카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을 꺾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의 거사는 고변으로 인해 칼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한 채 막을 내렸지만, 사약을 마시기 전 임금이 있는 북쪽(한양)이 아닌 조카가 있는 영월을 향해 절을 올렸다는 민담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눈앞의 거대한 힘에 무릎 꿇을 것인가, 아니면 지킬 수 없는 조카를 위해 기꺼이 부서질 것인가."
영화 '왕과 같이 사는 남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도 이와 같습니다. 권력을 탐하지 않았으나 권력에 의해 쓰러져간 인물,
하지만 그 처절한 패배를 통해 영원한 충의의 상징이 된 금성대군 이유. 이제 우리는 세종의 아들로 태어나 순흥에서 한 줄기 빛으로 스러지기까지, 그가 지키고자 했던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을 기록의 발자취를 따라 되짚어 보려 합니다.
핏줄을 나눈 형제마저 적으로 돌아서야 했던 비정한 시대, 그 잔혹한 어둠 속에서 오직 홀로 빛났던 금성대군의 32년 생애. 그가 지키려 했던 조선의 '도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지금부터 그 뜨거웠던 기록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생각해봐요!
드라마 속의 금성대군과 역사 속의 금성대군 중 여러분은 어떤 모습이 더 인상 깊었나요?
만약 여러분이 금성대군이었다면, 막강한 힘을 가진 형 수양대군의 손을 잡았을까요?
아니면 외로운 조카 단종의 곁을 지켰을까요? 여러분의 선택(選擇)이 곧 금성대군이 걸어갔던 길의 의미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