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짚모자
그 가을의 마지막 날로 기억되는 어느 날의 일이었어. 나는 한 친구와 학교 뒤의 조붓한 언덕길을 걷고 있었지. 그때 나는 일행으로 보이는 두 소녀가 언덕 위에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내려오는 걸 알아차렸어. 우리는 공기처럼 스쳐지나갔어. 그 중 한 명은 아무래도 너 같았어. 막 스쳐지나갔을 때 나는 무심히 그 소녀의 아무렇게나 땋아내린 머리모양에 눈길을 주었지. 그것이 가을 햇살에 희미한 냄새를 풍겼어. 나는 그 햇살을 통해 전해오는 냄새에서 언젠가 맡았던 밀짚모자 냄새를 떠올렸지.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