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피하는 저작권법
나는 블로거다. 또한 저널리스트다. 인터넷 신문사 최초로 블로그형 홈페이지를 구축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블로그 전문가 및 관리사로 불리는 나조차 저작권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다. ‘자유 이용 및 표현의 자유’를 방패삼아, 여기 저기서 글을 가져와 카피하거나, 스크랩하거나, 사진을 올리거나, 링크를 시켰다. 그런데, 저작권법을 깊게 파고 보니, 내 블로그의 상당수가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었고, 내가 출판한 전자책도 저작권 침해 위험이 있어 보였다.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알았으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며, 예전에 몰라서 범한 저작권 침해 위험 부분은 수정하였다. 블로그 글은 너무 많아서 여전히 침해된 채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이제부터 법망에 저촉되지 않게 글을 쓰는 수밖에.
나는 변호사가 아니다. 또한 법률가도 아니다. 변호사와 법률가는 법에 대해 전문가이지만, 문장가는 아니다. 나는 글쟁이다. 법률가는 아니어도 법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판결문’ 덕분이다. 그러한 판결문이 나오기까지 변호사와 판사의 힘든 지적 노동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저작권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결문은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이라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만약, 판결문이 ‘보호받는 저작물’이라면, 판사와 원고 변호사, 피고 변호사 및 원고와 피고의 공동 저작물이 되어서, 아주 복잡한 역학 함수가 존재하여, 누구나 함부로 판결문을 인용할 수조차 없게 될 것이다. 판결문을 맘껏 인용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법률가의 지적 노동 덕분에 대한민국을 소유한 지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법부의 열매인 그 판결문을 향유하는 것이다.
판결문은 법률적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읽기가 지겹고 복잡하다. 왜 판결문은 소설처럼 재밌지 못할까? 사람사는 세상을 다룬 판결문속에 왜 인간의 눈물이 없을까? 울고 웃고, 속고 속이는, 사람 사는 세상이 소송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지는데, 판결문은 아주 긴 복문과 딱딱한 법률조항으로 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이 못 알아보게 하려는 법적 기득권층의 담합이 느껴질 정도다.
이 책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디까지 저작권 침해이고, 어디까지 이용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속시원히 설명하려고 펜을 들었다. 가끔, 정부의 ‘블로그 단속’에 대해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묘사될 때가 있는데, 역사적 비유로 적절치 않다. 비슷한 것처럼 보여질 뿐, 비유적 오류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한자의 폰트’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진나라 서체가 중국을 통일했다. 헌법을 만들고 표준어를 제정해서 서울을 제외한 전국의 방언을 사투리로 규정한 대한민국 정부가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했는가?
나는 ‘블로그 단속 강화’를 찬성한다. 익명으로 낙서칠한 댓글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역겨운지 알고 있고, 겪었고, 그 심적 고통을 체험한 자로서, 표현의 자유와 함께 표현의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에서 이런 내용도 여과없이 쓸 작정이다.
끝으로 이 책은 블로그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블러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저작권에 초점을 맞춰서, ‘어문 저작물’의 표절에 대해서도 알아볼 것이다. 몇해 전 선덕여왕 뮤지컬이 표절 시비에 휘말려 ‘표절했다’는 감정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표절 즉, 저작권 침해는 글쓰는 작가로서 늘상 경계해야할 지뢰(地雷)같은 것이다.
블로그, 한미 FTA가 오래전 비준되었고, 저작권 분쟁은 허리케인처럼 불어닥칠 것이다. 형사법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하지 않으려면, 미리 알고 유비무환(有備無患)하는 게 블로그의 생존 비결이다.
끝으로 나의 근본자, 모든 인류의 근원자가 되시는 우주의 창조주께 진정 감사드린다. 우주의 부모로서 불효자식과 같은 인류를 향해 얼마나 슬퍼할까? 아직 부모로서 경험이 없는 나로서 그 심정을 깊게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창조주를 우주의 부모로서 믿는다.
더불어 나에게 창조주의 창조목적을 알게 해준 정명석 선생님께도 깊은 고마움과 감사를 드린다. 그는 언제나 정직했고 진실했다. 단지 세상이 지구처럼 그를 향해 배반의 밤을 보였을 뿐이다. 그는 언제나 신실함의 종교인으로서 사랑의 목회자였다. 그는 말보다 실천이었다. 실천보다 말뿐인 이 비겁한 정보 홍수의 시대에 그가 걸어간 ‘실천적 진리’의 길은 나의 가야할 인생의 지표가 되었다. 나도 묵묵히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가기로 작정했다. 정명석 선생님은 나의 진정한 인생 멘토이다. 이 책을 그에게 바친다.
2014. 8. 2.
장창훈 작가